빨강 머리 앤이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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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알아낼 것이 많다는 건 참 좋은 일 같아요. 만약 이것저것 다 알고 있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그럼 상상할 일도 없잖아요!”
꿈을 이룬 다는 것의 진짜 의미, 꿈과 현실 그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우리가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망설이는 이유는 그 결정으로 지불해야 하는 몫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수업이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의 결과가 지금의 우리이며, 그것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내 몫이다.
꼭 꿈을 직업으로만 이뤄야 하는 걸까? 사람들은 말한다. ‘가슴뛰는 일을 해라!’ 멋진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가슴 뛰는 일을 직업으로 가질 수 있는 걸까? 자신의 꿈을 직업으로 이룬 사람은 많지 않다. 꿈을 직업으로 이루었다고 꼭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직업은 적어도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게 맞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본래의 직업은 자아실현과는 거리가 먼 셈이다.
나는 버리고 떠나는 삶을 존중하지만, 이제는 버티고 견디는 삶을 더 존경한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 어느 것을 직업으로 선택해야 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제 조심스럽게 ‘잘하는 일’ 을 하라고 말한다. 잘하는 것을 오래 반복하면 점점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에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다..... 이 세상에 ‘삶’ 보다도 강한 ‘꿈’은 없다. 인간은 꿈을 이룰 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꿈꿀 수 있을 때 행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와 미래에서 자유로워 지면, 자신에게 주어진 이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된다.
시간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시간 시야는 확실히 좁아진다. 노인들이 행복한 건 그 때문이다. 시간 시야가 좁아진다는 건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은 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사실 쾌락주의는 절제를 통해 그것을 깊게 체험하라는 말과 같다. 꿀을 좋아하는 곰돌이 푸우가 가장 행복해하는 시간은 사실 ‘꿀을 먹는 시간’이 아니라 ‘꿀을 기대하는 시간’이다. 꽃은 활짝 피기 전이, 꿀은 먹기 전이 가장 달콤하다. 우리는 너무 즉각적인 만족의 세계에 사는 건 아닐까? 기다림은 우리에게 결과를 떠나 과정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오히려 만끽이라는 말은 이 설렘 뒤에만 따라오는 충만일지도 모른다.
적당한 결핍은 쾌락을 증폭시킨다.
솔직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는게 건강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나는 뒤끝이 없다고 하는데, 사실 자기 하고 싶은말 다 해 버리는 사람들에게 뒤끝이 있을 리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든 우정이든, 떠날 필요가 없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살면서 슬퍼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점점 건강을 잃게 되고, 가족과 친구 중 일부를 병이나 죽음으로 잃게 된다.
사랑이 타이밍이 아니다, 타이밍 자체가 사랑이다.
우리는 완벽한 프라이버시의 실종 상태에 살고 있다.
결혼이란 건, 말하자면 앞으로 저 사람이 네게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온갖 고통을 주게 될 텐데, 그 사람이 주는 다양한 고통과 상처를 네가 참아낼 수 있는지, 그런 고통을 참아낼 정도의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를 네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이 될 거야.
누군가의 성공 뒤엔 누군가의 실패가 있고, 누군가의 웃음 뒤엔 다른 사람의 눈물이 있다. 하지만 인생에 실패란 없다. 그것에서 배우기만 한다면 정말 그렇다. 성공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이지만, 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성공인 실패도 있다.
노력이 의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늘 내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의지박약이란 말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이젠 노력이 일종의 ‘재능’이라는 걸 안다. 노력은 의지가 아니다. 노력이야말로 어떤 면에서 타고난 재능이다.
실패도 잘해야 다음 성공의 초석이 될 수 있다. 지는 것 역시 그렇다.
숲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그런 것이다. 나무도 계절에 따라 몸을 바꾼다. 여름엔 무성하고 겨울이면 헐벗는다. 인생을 계절에 비유하면 청춘은 여름이고 노년은 겨울이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 너무 아깝다’라는 말을 납득한다. 젊음은 스스로 너무 반짝여서 다른 존재들의 반짝거림을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봄에 피어나는 꽃이 얼마나 예쁜지, 가을의 단풍을 보는 기쁨이 얼마나 가슴 아린지······. 젊음은 스스로 너무 심각해서, 삶이 때때로 농담을 던지듯 가벼워야 하는 무엇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톨스토이의 말이 맞다.
내가 신이라면 나 역시 청춘을 인생의 맨 마지막에 놓겠다. 인생의 마지막에 이토록 푸릇한 청춘이 놓여 있다면, 삶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