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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보다 먼저 본 튜브.
이 책을 보고 아몬드를 챙겨봤다.
뻔하다고 생각한 결말을 가뿐하게 넘겨준 작가의 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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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죠, 해보는 거죠. 그리고 그다음에요?
있잖아, 진석아. 난 그동안 뭘 할 때마다 늘 목표를 생각했거든. 근데 그 목표들이 순수하지가 않았어. A는 B를 위한 행동이고 B는 C를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랬거든? 근데 그게 다 부질없게 느껴지더라, 최종 목표가 무너지면 중간에 했던 A부터 Z가 전부 무의미해 지더라고. 그래서 이제 그렇게 거창한 목표 같은 걸 안 세우기로 했어. 행동에 목표를 없애는 거지. 행동 자체가 목표인 거야.
미래를 생각 안 한다는 거예요?
언젠가는 다시 생각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일단은 아니야. 네 말대로 지금은 미래 같은 거 생각 안 해. 충분히 많이 해봤거든. 근데 도착해야 할 미래의 이정표를 너무 먼 곳에다 세워놓으니까, 현재가 전부 미래를 위한 재 로가 되더라고, 자세 하나 고치는 거, 그 자체가 목표야 그다음? 그런 거 없어. 그냥 하나라도 온전하게 끝까지 해보고 싶어.
그날 저녁 성곤의 눈물겨운 웃음 도전기가 펼치했다.
성곤은 휴대전화를 셀카 모드로 놓고 나름대로 다양한 웃음을 시도했다. 미소, 조소, 냉소, 환한 웃음, 따스한 웃음, 감격한 웃음. 각각의 표정에 걸맞은 상황을 떠올리며 그는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렀다. 자신의 표정을 분석한 뒤 개선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떨리는 마음으로 사진을 살펴본 성곤은 실소를 내뿜지 않을 수 없었다. 수많은 사진 속에 담긴 표정이 한 결같이 똑같았다. 끔찍하게 연기를 못하는 배우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연기를 못한다면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김성곤이라는 캐릭터의 흥행이 실패한 이유에 웃음, 혹은 표정이라는 요소도 큰 몫을 했을 게 분명했다
칭찬에 영혼이 없으니까 그렇죠.
성곤은 진석의 거듭된 영혼 타령에 부아가 났다.
말에 영혼을 어떻게 넣어. 라면 국물에 수프 넣듯 할 수 있는 거라면 나도 좋겠다.
엇, 그 말 괜찮은데요. 영혼은 수프 같은 것.
삶이 다채로운 맛과 향으로 구성된 서랍장이라면 성곤은 계속해서 한가지 서랍만 열고 있었다. 분노, 짜증, 울분, 격분, 우울, 좌절이 가득 담긴 서랍. 어느새 그는 다른 서랍을 여는 방법을 망각했다. 참다운 기쁨. 단어 안에 담 아놓기 힘들 정도로 충만한 감정이 담긴 서랍은 꾹 닫혀 있었고 이제는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김성곤 안드레아는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흐드러진 봄 꽃이 길을 따라 피어 있었다.
언제 꽃이 폈는지도 몰랐는 데 계절은 이미 봄의 절정을 지나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바라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느끼지 못한다.
성곤은 시인처럼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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